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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얼굴

 

 

 

 

일본이라는 국명이 이미 720년에 '일본서기'가 편찬되는 등 그 뿌리가 깊어

1590년대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왜'가 아니라 '일본'이라고 했다.

이 글에서는 '왜구'라는 말을 '일본군'으로 바꾸어 불렸는데

그 이유는 조선에 침입한 것은 '왜구'라는 해적의 무리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였고

정규군인 '일본군'을 동원했다,

우리 역사책에는 '임진왜란'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당시의 조선도 '임진난'이나

'임진왜란'으로 불렀는데

이글에서는 '7년 전쟁' 또는 '조일 전쟁'이라고 했다. 

1592년에 조선이 경험한 것은 왜인들이 일으킨 난리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규군의

침공이었고 조선의 항전과 명의 참전으로 이어진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해인 '임진'이나 왜인들의 난리라는 뜻의 '왜란'보다는

전쟁의 기간을 강조하는 '7년 전쟁' 또는 전쟁의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의 정식 국명을 써

'조일전쟁'으로 불렀다.

 

제1장  7년전쟁은 막을 수 있었다.

1591년, 유난히 시끄러운 조정,,,,

'7년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1년 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고

그전에 현감이라는 지방의 책임자인 종6품의 수령으로 있었다.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기 1년전에 일본의 내부 동태를 탐지하기 위해 파견한

황윤길, 김성일 등의 일행은 일본에 1년정도 머무르며

일본의 움직임 즉 전쟁 가능성을 탐지하고 돌아와

김성일의 반대당의 황윤길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자 그럴리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1년후 일본의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김성일은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제2장  수군에게 희망이 있었다.

이순신은 1592년 5월 4일 여수에서 첫 출동을 했고

옥포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에서 일본 함선 26척을 격파했고

출동하기 이틀전에 선조는 이미 서을 떠나 북으로 비참한 피란 행차를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옥포에서 승리후 쉬고 있던 전 함대에 다시 출동하여

합포에서 일본의 대선 네척과 소선 한척을 수장시키고

그 다음날 적진포에서 대선과 중선을 합해 13척의 일본을 승리로 끝났을때

선조가 일본군을 피해 평안도로 피란을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제3장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조선은 전라도를 사수하는데 힘을 쏟았다.

김시민은 진주성전투의 승리를 위해 상관을 내치는데 주저하지않고

일본군과 혈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다.

일방적으로 몰리던 전세는 균형을 이루게 되고

바다에서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에서 일본군의 수륙병진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이순신을 두려워하게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 금지령을 내린다.

 

제4장  누구를 위한 휴전 협정인가,

오만한 제국 명의 참전,,,  일본의 전력을 비로소 감지한 명은 본격적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지만 평양성전투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행주성전투의 패배로 서울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타격을 받는다.

일본은 명에게 휴전 협상을 제안한다.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 조선이 자리는 없었다.

 

제5장  조선 최초의 해군참모총장 이순신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한산도 전진 기지에 마련한다.

군대와 민초가 공동으로 둔전을 경작하게 하고

과거 시험을 보러 가기 힘든 수군들을 배려해

한산도에 진중 과거장을 설치한다,

하지만 군율을 세워야 할 때는 냉혹하다.

 

제6장  이순신 대 원균

강화 협상은 결렬되었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순신에게 청전벽력과 같은 명이 떨어졌다,

조정서는 뜻밖에도 현직 3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실각 시키기로 한것이다.

결국 백의종군의 처지로 전략한 전쟁 영웅 이순신의 얼굴에는 절망고 고뇌가 가득 찼다.

이순신의 빈자리를 물려받은 원균의 함대는 칠천량 해전에서 몰살당했고

그 여파는 전라도 함락으로 이어졌다.

 

제7장  조선을 두 번 살린 이순신

다시 돌아온 이순신 명라해전에서 13척으로 130여 척을 상대해 승리한다.

이순신 최후의 결전, 바로 노량해전이다.

적은 7년에 걸쳐 조선 8도를 유린했다조선의 민초가 흘린 피는 산하를 물들였다.

하지만 바다는  이순신이 있을 때 바다의 핏빛은 일본군의 것이었다.

이순신은 조선을 빠져나가려는 침략자에게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요구했다.

도망가는 적을 향한 비정한 일격, 그래서 더 치열하고 안타까운 전투였다.

적군이 쏜 탄알이 이순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이미 사천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치료에 고생하기도 했으나 이번의 총탄은 달랐다.

이순신의 가슴을 치고 나간 총탄은 그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마지막 벅찬 숨을 쉬며 부하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전투가 급하다.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순신의 두 얼굴에서는 이순신의 평범한과 비범함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도 우리와 똑같이 사람 때문에 갈등하고 힘들어 하고

마음아파하고,,,

7년 전쟁에서의 모든 부분이 다 들어있어

영화를 보는 듯 눈에 환하게 나타나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로 엮어지는 소설은 아니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간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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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어떤 섬이길래 일본에서 자꾸 탐을내나?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자연

 

 

 

독도는 바다 밑 화산폭발로 2000미터 이상 솟아올라 만들어진 섬이다.

그래서 독도 부근 바다의 깊이는 2000미터가 넘는다.

 

독도의 바닷물 속을 들여보면 지름이 약 24킬로미터나 되는 

커다란 탁상 모양의 해산이 독도를 떠받치고 있다.

24킬로미터면 자동차가 시속 60킬로미터 속도로 24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다.

그러니까 독도는 정상 부분이 평평한 해산이 바닷물 위로 솟아오른 섬이다.

게다가 독도 동쪽에는 이런 커다란 해산이 두 개 더 있다.

 

일본이 자꾸 독도를 탐내는 데에는 영해를 늘리겠다는 의도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독도 바다에는 물고기도 많고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북한 한류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따뜻한 쓰시마 난류가 만나는 해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연어와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같은 

물고기가 유난히 많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오징어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잡힌다.

 

독도 바다 밑에는 다시마와 미역, 소라, 전복 등과 같은 해조와 해양 생물이 

많이 살고 있다.

최근에는 청정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되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자원이다.

그 양이 제법 된다고 한다.

다른 금속 자원도 풍부하게 묻혀 있다.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국가 사이에 영토 분쟁이 일어날 때에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지도와 책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국제 사회에서는 영토 분쟁을 다룰 때 어느 쪽이 먼저 그 땅을 알았는지

어느 쪽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독도가 오래전부터 우리 땅이었다는 자료가 많다.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독도는 우산도, 삼봉도 같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김부식이 씆 '삼국사기'를 보면

512년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복한 다음부터

그 땅은 줄곧 우리 땅이었다고 한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 두개로 이루어진 고대 해상 왕국을 일컫는 말이다.

이후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랍', '숙종 실록'에도 

우리 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531년에 만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우산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까지 있다.

이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안쪽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또 1898년 '대한여지도'와 1899년 '대한전도'에도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라고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1693년에는 또  

일본 어선이 울릉도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자 어부 안용복이 왜 조선 바다에 들어와

마음대로 물고기를 잡냐고 따졌다.

그리고 직접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고

울릉도와 독도 부근에서 물고기를 잡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우리나라 지도 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에서 만들어진 지도에도 

독도는 우리 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이 

1737년에 그린' 조선왕국전도', 1667년 일본의 '은주시청합기'라는 지도에도

독도의 모습이 보였다.

반면 19세기까지 일본 스스로 만든 지도를 죄다 뒤져도 

독도가 나와 있는 지도는 없다.

 

독도가 가장 오래된 화산섬   

독도는 약 450만 년 전, 울릉도는 약 250만 년전, 제주도는 약 120만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재미난 시실은 크기가 가장 작은 섬인 독도가 나이는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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