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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날 서울근교 가족나들이 행주산성이 품고 있는 멋진 경치

가본곳

 

햇볕이 따스한 봄 날이다.

미세먼지 적고 바람도 살랑 바람이 불고,,,,

어디 서울 근교 좋은곳에 가자던 신랑은 예전에 밥 먹으러 한 번 가 본적이 있는 행주산성을 가자고 한다.

나도 아들도 행주산성에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그리고 저녁에는 시댁에도 가야하니 가까운 곳으로 안성맞춤이라 생각도 들고

평소 운동을 못 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서는 산성이라 운동도 될 거라 생각에 기대를 하면서 떠났다.

 

행주산성 들어가기 전 일산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토요일 날씨도 좋아서 행주산성에 가는 사람들이 많나보다 했는데 행주산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시원하게 뚫렸다.

 

행주산성 입구 매표소 앞의 주차장은 작아서 이미 만차라 왼쪽 도로로 내려가 큰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켰다.

주차비는 종일 2,000원이다.

행주산성 입장료는 어른은 1,000원, 초등학생은 300원, 중,등학생은 500원이다.

 

 

 

 

매표소 옆에는 기념촬영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었다.

 

 

 

 

표를 내고 입구로 들어서면 보이는 권율장군의 동상이 떠~억 하니 늠름하게 서 있다.

1986년에 세웠으며 동상 밑에는 권율장군의 살아오신 내력이 적혀있다.

 

 

 

 

권율장군 동상 뒤쪽에 있는 행주대첩 당시 관군과 승병, 여성들의 항전 모습을 묘사한 부조가 둘러쳐져 있다.

 

 

 

 

 

 

 

 

 

행주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벚꽃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살구꽃이 벚꽃처럼 화려하게 뽐내고 있다.

 

 

 

 

소나무들도 꽤 많아 걸어 올라가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고 운치가 있다.

 

 

 

 

개나리가 행주산성의 봄을 이쁘게 알려주고 있다.

 

 

 

 

행주산성 위쪽으로 가고 있는 길이다.

개나리도 이쁘고 옆으로는 한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빨간 가양대교다~~

아 ~~~~~~~ 정말 멋진 한강의 모습에 가슴이 트이기 시작한다.

 

 

 

 

거의 올라가니 눈에 띄이는 경치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런 멋진 경치를 품고 있는 곳이 있을 줄이야,,,,,,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몸도 시원! 가슴 속도 시원하게 다리쉼을 잠깐 하는데

머리 위에 있는 단아한 한국의 색에 마음이 다시 빼앗겨 버린다.

 

 

 

 

충의정 이곳은 임진왜란 때 옛 무기고와 군량창고가 있던 곳 자리라고 한다.

이 안에는 행주대첩 당시 우리 군이 사용하였던 회차, 신기전, 총통기 등 무기류와

대첩기록화, 대첩비문탁본, 권율장군의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다.

 

 

 

 

망원경으로 북한산 봉우리도 보고,,,,

 

 

 

 

임진왜란과 행주대첩, 권율 장군의 생애 등을 담은 비디오 영상도 봤다.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좌석 옆에는 북과 신기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행주대첩비,,,,

 

 

 

 

 

 

 

 

 

 

 

 

 

 

사당 안에도 행주대첩비가 있다.

 

 

 

 

이 행주대첩비는 권율 장군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선조35년 장군의 부하들이 세운 비이다.

비문은 1593년 행주대첩의 경과와 권율장군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비문은 최립이 짓고 비의 명칭은 김상용, 글씨는 한석봉이 썼으며 끝의 추기는 이항복이 지었고 김현성이 썼다.

이 비는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으나 오랜 세월 풍화작용과 마모로 비 몸이 갈라지고 떨어져 같은 재질로 보수된 상태이며 헌종 11년 같은 내용의 비를 기공사에 세워 놓았다.

행주대첩비는 경기 유형문화재 제74호이다.

 

 

 

 

행주대첩비 옆에 있는 멋진 소나무도 찰칵 사진 한 장,

 

 

 

 

 

 

 

 

 

행주산성 토성으로 가는 계단이다.

 

 

 

 

그 당시에 쌓았던 토성 위를 걷는다.

 

 

 

 

 

 

 

 

 

철쭉꽃이 화려하다.

 

 

 

 

주차장을 벗어나 약간 밑으로 내려오다 보면 활 쏘는 곳이 있다.

열 발에 2,000원! 싸다~~~

 

 

 

 

주인 아저씨에게 활 쏘는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권율 장군은

조선 중종 31년 1537년 영의정 권철의 아들로 출생,

선조 15년 1582년 46세에 문과에 급제였다.

임진왜란 중 충남 금산군 이치싸움에서 전주로 진격하는 왜군을 대파하였고

경기 수원 독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왜군의 서쪽 진격을 막았다.

1593년 2월 서울을 회복하려고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겨 민관군이 힘을 합하여 2,300명의 군사로써

3만 명의 왜군을 물리치는 행주대첩의 위업을 달성해 나라에 큰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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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 행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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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얼굴

 

 

 

 

일본이라는 국명이 이미 720년에 '일본서기'가 편찬되는 등 그 뿌리가 깊어

1590년대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왜'가 아니라 '일본'이라고 했다.

이 글에서는 '왜구'라는 말을 '일본군'으로 바꾸어 불렸는데

그 이유는 조선에 침입한 것은 '왜구'라는 해적의 무리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였고

정규군인 '일본군'을 동원했다,

우리 역사책에는 '임진왜란'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당시의 조선도 '임진난'이나

'임진왜란'으로 불렀는데

이글에서는 '7년 전쟁' 또는 '조일 전쟁'이라고 했다. 

1592년에 조선이 경험한 것은 왜인들이 일으킨 난리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규군의

침공이었고 조선의 항전과 명의 참전으로 이어진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해인 '임진'이나 왜인들의 난리라는 뜻의 '왜란'보다는

전쟁의 기간을 강조하는 '7년 전쟁' 또는 전쟁의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의 정식 국명을 써

'조일전쟁'으로 불렀다.

 

제1장  7년전쟁은 막을 수 있었다.

1591년, 유난히 시끄러운 조정,,,,

'7년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1년 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고

그전에 현감이라는 지방의 책임자인 종6품의 수령으로 있었다.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기 1년전에 일본의 내부 동태를 탐지하기 위해 파견한

황윤길, 김성일 등의 일행은 일본에 1년정도 머무르며

일본의 움직임 즉 전쟁 가능성을 탐지하고 돌아와

김성일의 반대당의 황윤길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자 그럴리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1년후 일본의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김성일은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제2장  수군에게 희망이 있었다.

이순신은 1592년 5월 4일 여수에서 첫 출동을 했고

옥포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에서 일본 함선 26척을 격파했고

출동하기 이틀전에 선조는 이미 서을 떠나 북으로 비참한 피란 행차를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옥포에서 승리후 쉬고 있던 전 함대에 다시 출동하여

합포에서 일본의 대선 네척과 소선 한척을 수장시키고

그 다음날 적진포에서 대선과 중선을 합해 13척의 일본을 승리로 끝났을때

선조가 일본군을 피해 평안도로 피란을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제3장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조선은 전라도를 사수하는데 힘을 쏟았다.

김시민은 진주성전투의 승리를 위해 상관을 내치는데 주저하지않고

일본군과 혈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다.

일방적으로 몰리던 전세는 균형을 이루게 되고

바다에서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에서 일본군의 수륙병진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이순신을 두려워하게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 금지령을 내린다.

 

제4장  누구를 위한 휴전 협정인가,

오만한 제국 명의 참전,,,  일본의 전력을 비로소 감지한 명은 본격적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지만 평양성전투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행주성전투의 패배로 서울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타격을 받는다.

일본은 명에게 휴전 협상을 제안한다.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 조선이 자리는 없었다.

 

제5장  조선 최초의 해군참모총장 이순신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한산도 전진 기지에 마련한다.

군대와 민초가 공동으로 둔전을 경작하게 하고

과거 시험을 보러 가기 힘든 수군들을 배려해

한산도에 진중 과거장을 설치한다,

하지만 군율을 세워야 할 때는 냉혹하다.

 

제6장  이순신 대 원균

강화 협상은 결렬되었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순신에게 청전벽력과 같은 명이 떨어졌다,

조정서는 뜻밖에도 현직 3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실각 시키기로 한것이다.

결국 백의종군의 처지로 전략한 전쟁 영웅 이순신의 얼굴에는 절망고 고뇌가 가득 찼다.

이순신의 빈자리를 물려받은 원균의 함대는 칠천량 해전에서 몰살당했고

그 여파는 전라도 함락으로 이어졌다.

 

제7장  조선을 두 번 살린 이순신

다시 돌아온 이순신 명라해전에서 13척으로 130여 척을 상대해 승리한다.

이순신 최후의 결전, 바로 노량해전이다.

적은 7년에 걸쳐 조선 8도를 유린했다조선의 민초가 흘린 피는 산하를 물들였다.

하지만 바다는  이순신이 있을 때 바다의 핏빛은 일본군의 것이었다.

이순신은 조선을 빠져나가려는 침략자에게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요구했다.

도망가는 적을 향한 비정한 일격, 그래서 더 치열하고 안타까운 전투였다.

적군이 쏜 탄알이 이순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이미 사천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치료에 고생하기도 했으나 이번의 총탄은 달랐다.

이순신의 가슴을 치고 나간 총탄은 그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마지막 벅찬 숨을 쉬며 부하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전투가 급하다.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순신의 두 얼굴에서는 이순신의 평범한과 비범함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도 우리와 똑같이 사람 때문에 갈등하고 힘들어 하고

마음아파하고,,,

7년 전쟁에서의 모든 부분이 다 들어있어

영화를 보는 듯 눈에 환하게 나타나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로 엮어지는 소설은 아니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간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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